" async="async"> ', { cookie_domain: 'auto', cookie_flags: 'max-age=0;domain=.tistory.com', cookie_expires: 7 * 24 * 60 * 60 // 7 days, in seconds }); 상큼한 새아침 :: 실패한 원인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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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실수를 하면 혼나는 것으로 그만이었다. 그때가 그립니다. 지금은 실패를 하면 반드시 그 실패한 원인을 알아야 한다.

 

 

경기도에서 전자부품회사를 경영하는 문지형씨는 3번이나 지옥 문턱을 갔다 왔다고 한다. 가진것을 모두 잃었다는 사실은 그나마 참을만 했다. 수 차례 범법자로 몰려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졌고, 주변사람들 에게 도둑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처가 사람들 마져 그를 사람구실 못한다며 몰아 세웠다.

문씨가 마지막으로 부도를 냈던 금액은 7억원 정도 였다고 한다. 지금은 사정이 좀 바뀌었지만, 지난 1990년대 까지만 해도 부도를 낸 사업주는 철창신세를 지는 경우가 많았다. 수표를 남발하고 갚지를 못했으니 부정수표 단속법에 따라 처벌되었던 것이다. 문씨는 빛쟁이와 경찰에 쫏기다가 마침내 한강에 빠져죽을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무역회사 출신인 그는 지난 1980년대 초반, 국내 전자 산업이 활황기미를 보이자 일본에서 부품을 수입해 가전회사에 납품하는 사업을 시작 했다. 한동안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러다가 아예 일본 기술을 도입해 제조하는 쪽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그동안 모은 자금에 은행돈을 빌려 비용을 충당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일부 대기업 협력사들이 문씨 회사보다 앞서 그 부품을 생산하기 시작 했던 것이다. 겉으로는 대기업 협력사라지만, 실제로는 한식구라는 것이 업계의 관행. 대기업의 임원이 독립해 세운 회사가 많았고 위장 계열사 또한 적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들이 문씨 회사와 관계를 끊는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십수억원을 들여 기술 도입과 설비에 투자했던 문씨의 회사는 제대로 움직여 보지도 못하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문제가 생긴것을 간파한 은행에서는 돈을 갚으라고 요구 했다. 문씨는 내 사업이 잘 되니까 대기업들이 나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다 면서 조금만 기다려 주면 매출을 올려 빚을 갚겠다고 항변했다고 한다.

이렇게 은행을 설득한 뒤, 제품생산에 들어 갔지만 부품을 사겠다는 전자회사는 한곳 밖에 없었다. 이정도 수요만으로는 공장 운영비도 충당할 수 없었다. 부품을 가져간 회사는 물품 대금을 제대로 지급해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부도를 내고 말았다. 공장과 설비는 모두 경매에 붙여졌고, 문씨가 살던 집도 다른사람에게로 넘어갔다. 첫번째 사업의 살패 였다. 으 이후 문씨는 대기업 얘기만 나오면 파르르떠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문씨의 얼굴은 혹독한 세월을 겪은 사람답지 않게 밝고 단아 했다. 마치 고생이라고는 구경도 해보지 못한 사람처럼 같아 보였다. 그는 속으로 골병이 들었다면서 웃었다. 사업이 망할때 마다 10년씩은 더 늙은것같아요. 죽을 고비를 세번 넘기고 나니까 초연해 지더라고요. 마음 고쳐먹고 다시 출발해서 여기까지 온겨죠. 그런데 3번째 망할때 까지도 너무 멍청했던것 같습니다. 왜 망했는지도 모르고 시간만 낭비 했으니까요.

 

 

잘되면 사업가, 망하면 사기꾼

 

1986년 시작한 두번째 사업 역시 전자 부품을 수입하는 일이었다. 국내에서 만들기 어려운 고급 부품을 수입해 전자업체들에 넘기는 오퍼상 역할이었다. 그러나 사업을 시작한지 1년도 안돼 문을 닫아야 했다. 돈을 송금하러 은행에 갔던 경리 여직원이 잠적했던 것이다. 입금이 되지 않았다는 일본 거래처의 연락을 받고 은행 계좌를 확인한 문씨는 기겁을 했다. 잔고가 텅 비어 있었다. 여직원이 알뜰하게 횡령한 것이었다,.

나중에 경찰에 붙잡힌 여직원은 장사를 하는 남자친구의 사정이 너무 급해서 회사돈에 손을 댓다며 울먹였다. 우습게도 남자친구는 장사를 한적이 없었다. 여직원을 속여 회사돈을 갈취한 뒤 흥청망청 탕진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직원은 문씨 당고모의 딸이었다. 당고모가 건네준 돈으로 일부 외상을 갚은 문씨는 곧바로 두번째 사업의 간판을 내렸다.

 

세번째 사업은 컴퓨터 였다. 1990년대 초반 PC붐이 일자. 외국산 부품과 주변기ㅣ기를 수입해 파는 일에 나섰다. PC업그레이드 수요가 숨가쁘게 일어나자 부품이 잘 팔려 나갔다. 욕심이 생겼다. 직원들을 뽑아 직접 PC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직판 매장을 얻고 대리점도 개설해 물량을 늘렸다. 신문에 광고도 냈다. 그러나 이 사업도 2년을 넘기지 못했다. 우후죽순 난립한 조립 PC업체들이 출혈경쟁을 벌이면서 사업성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당시 문씨는 조금만 더 버티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망할때 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친구와 친척 돈을 끌어들여 급한대로 자금을 융통 했고 대리점을 늘렸다. 헌데 과열경쟁이라는 수렁은 문씨의 생각보다 훨씬 갚었다. 마침내 부도가 났고 가족이 다시 생이별을 하게 됐다. 경찰과 빛쟁이에게 쫏긴 문씨는 몇달간 지방 여관을 떠돌며 기약없는 방랑자 신세가 되었다.  본의 아닌 사기꾼이 된 것이다.

 

사업의 세계가 비정하다. 잘되면 사업가지만 , 잘못되면 사기꾼으로 몰리는 경우가 많다. 문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그를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사업가로 보고 자금을 내 주었다. 그러나 문씨가 망하고 난 뒤 그에게는 사기꾼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애꿎은 돈을 날려 먹었으니 돈을 빌려준 입장에서 보면 문씨는 사기꾼이다. 남의 속을 어떻게 알겠는가? 사업에 대한 문씨의 열정과 의지는 돈을 떼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제가 도망다니는 사이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사시꾼 마누라라는 말을 수백번은 들었을걸요. 친척들 마져 그랬으니 돈 앞에는 장사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저를 믿고 도와준 친구들 때문에 다시 일어설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동창 녀석이 자기돈 2000만원을 날렸는데도 밥 사먹으라고 300만원을 내 주더군요.

 

문씨는 성공을 위해서는 그만한 수업료를 기꺼히 치뤄야 한다고 말한다. 수업료란 셀패 또는 희생을 의미한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들을 만나면 그들의 픙족한 현제만을 보며 부러워 한다. 그들이 어떤 고난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주의 깊게 듣지 않는 경향이 있다. 죽을 고생이 많았다는 대목이 나올 때마다 그러려니 생각을 한다.  오로지 부자들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만 집요한 관심을 갖는다.

 

 

맛을 봐야 세상을 볼 수 있다

 

설문조사에 은한 100명의 부자들 가운데 실패의 맛을 보지 않았다고 대답한 사람은 19명이었다. 19명 중에는 전문직과 월급생활자가 많았다. 사업 보다는 전문직이나 기업체에서 일 하는것이 안정적인 셈이다.

부자 100면중에 81명이 실패를 겪었다. 실패의 기준은 다양했다. 사업에서 큰 손해를 본 사람부터 주식 투자에서 재산의 일부를 날린 사람까지 다양했다. 실패로 인해 전 재산을 잃은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17명 이었고, 나머지 64명은 피해를 입었으나 감당할 정도 였다고 대답했다.

다만 이들은 실패의 원인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

박윰섭씨는 쓴맛을 본 다음에야 세상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고 말했다. 실패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들이 꼽는 실패원인 가운데 가장 많았던 것은 불철저한 사업 또는 투자계획 과 준비였다. 문지형씨 역시  3번 실패한 뒤어 그 웜인을 파악하고깊이 반성 했다고 했다. 돈을 벌기 힘든 아이템을 잡거나 경기침체를 보지 못한이유 등도 주요 실패원인으로 꼽혔다.

 

문지형씨는 1996년 말부터 다시 일어샀다. 예전에 거래를 했던 일본 전자부품회사가  한국에 공장을 세우면서 문씨를 파트너로 지목했다. 오래전 부터 문씨의 성실성을 주목해온 일본회사가 그에게 합작을 제의한것이다. 그 일본 기업이 일부 자금을 댓고 , 모자라는 자금은 소개 받은 제알교포 실업가가 충당해 주었다.

이듬해 말, IMF 한파가 기습 했으나 이것이 문씨 회사에는 호재가 됐다. 원화 가치가 폭락하자 수출이 2배 이상 급증했다. 원화 값이 싸니 제조원가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해외에서 경쟁제품보다 싸게 팔아도 이익이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렇게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제일교포 실업가에게 돈을 갚았다. 그 이후 일본 회사는 사업 품목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그 사업에서 철수 했다. 그러면서 투자지분 가운데 상당 부분을 문씨에게 팔았다.

 

문지형씨는 자신의 실패담을 이야기 하며 금고에서 서류철을 꺼냈다. 서류철을 열자 수십매의 어음이 나왔다. 부도가 났던 어음들 이었다. 다른 회사것도 있었고, 문씨가 경영했던 회사의 어음도 있었다. 지금도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면 그 어음들을 보면서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된다는 것은 그냥 열심히 해서 모은다는 것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실패도 하고 배우기도 하면서 거기서 이력을 쌓아야지요. 갑자기 큰돈을 만질수는 있어도 경험이 없으면 금방 잃는게 세상의 이치일 겁니다.

 

-한국의 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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